혹시, 로봇?

 
 
혹시, 로봇?
 
 
 
 
인규는 친구가 없습니다. 단짝 지후가 이사를 갔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이제 인규만 남았습니다. 인규가 사는 아파트는 오래돼서 아무도 이사 오지 않습니다.
아빠, 우리도 이사 가요.”
인규는 매일 아빠를 졸랐습니다.
친구가 없으니까 너무 심심해요.”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놀잖아. 아빠는 이 아파트가 좋아.”
아빠는 빙그레 웃으며 인규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낡은 아파트가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사 안 가면 아무 말도 안 할 거예요.”
인규는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습니다. 방에서 혼자 노나, 밖에서 혼자 노나 똑같기 때문입니다. 인규가 꼼짝도 하지 않자, 아빠가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인규야, 아빠가 이 아파트를 왜 좋아하는지 말해줄까?”
인규는 말없이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사실 말이야. 이 아파트는 로봇기지야. 로봇을 만드는 연구소 같은 곳이지.”
!’
인규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이렇게 낡아빠진 아파트에서 로봇이라니 아빠가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란다. 우리 아파트에 빈 집들이 많잖아. 거기서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어.”
사실 인규는 알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이사를 못 간다는 것을요. 친구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는 누가 봐도 비싸 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로봇이라니 인규는 아빠가 더 미워졌습니다.
로봇을 만들려면 아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비밀을 지키기가 어렵거든.”
여기도 사람 많이 살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뿐이긴 하지만.’
인규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아빠는 로봇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해서 지금은 사람과 똑같은 로봇을 만들 수 있대.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로봇들과 같이 살고 있는 거야.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로봇이지만, 아직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도와줘야해.”
로봇과 같은 아파트에 산다니,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말보다 더 말이 안 됩니다. 인규는 이불을 휙 뒤집어썼습니다.
 
- 톡톡!
인규가 눈을 떴습니다. 커튼에 가려진 창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 인규는 당장 일어나 커튼을 걷고 싶었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아빠, 큰 소리로 불렀지만 아무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그 때 커튼 뒤로 그림자가 아른거립니다.
 
- 툭툭!
 
아까보다 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5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 귀신?’
머리가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그때 갑자기 스르륵 창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창문을 넘어옵니다. 인규는 눈을 꼭 감습니다. 그런데 가만, 그림자 모양이 어딘가 이상합니다. 사람 같기는 한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네모난 모양입니다. 인규는 너무 궁금해서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창문은 열려있고 커튼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인규가 고개를 돌리자, 상자 모양의 로봇이 갑자기 팔을 쭈욱 뻗습니다.
으악, 도와주세요! 아빠!”
 
인규가 눈을 뜨자 장난감 로봇이 얼굴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인규야, 무서운 꿈 꿨어?”
아침을 먹으며 아빠가 물었습니다. 인규는 로봇 꿈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아빠 말이 사실이라면 로봇과 만나게 해주세요.”
인규는 아빠 말을 믿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진짜 로봇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 그건 좀 곤란해. 아빠는 이미 로봇의 친구이기 때문에 비밀을 지켜야 하거든.”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빠가 또 거짓말을 하려고 해서 인규는 얼른 나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역시나 아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규는 2층에 사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저씨가 그냥 지나갑니다. 아빠가 이웃을 보면 무조건 인사를 하라고 했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2층 아저씨는 한 번도 인사를 받아준 적이 없습니다. 정말 이상한 아저씨입니다. 게다가 늘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양복, 빨간 넥타이에 코도 외국 사람처럼 높습니다.
혹시, 로봇?’
인규는 2층 아저씨를 몰래 따라갔습니다. 다행히 학교 가는 길과 같은 방향이라 지각할 걱정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하나 둘 이런 박자에 걷는다면, 아저씨는 하나, 두 울 하나, 두 울 하나, 로 걸었습니다. 아저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인규도 하나, 두울 하나로 걷게 되었습니다. 인규는 아저씨가 뒤돌아볼까봐 영화에서처럼 조금 가다 전봇대 뒤에 숨고, 조금 가다 쓰레기통 뒤에 숨었습니다. 시험 보기 전처럼 아랫배가 간질간질했습니다. 다행히 아저씨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2층 아저씨는 근처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쑤욱 들어갔습니다. 인규는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만두었습니다. 문 앞에 경비 아저씨들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가기가 너무 아쉬워서 유리창에 바짝 붙어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아저씨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로봇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올 리가 없는데.’
그 때 누군가 인규의 어깨를 덥석 잡았습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2층 아저씨가 서 있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아저씨, 로봇 맞죠?”
인규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아저씨가 놀란 듯 움찔하더니, 인규의 어깨를 놓아주었습니다. 인규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저씨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아저씨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순간 뭔가 번쩍 빛났습니다. 아저씨의 이는 온통 철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인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인규는 단숨에 학교까지 달려갔습니다.
수업 중에도, 쉬는 시간에도 인규는 온통 로봇 생각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2층 아저씨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망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빠 말대로 로봇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인규는 다시 2층 아저씨를 만나면 도망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방과 후 인규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를 했습니다. 로봇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헤어지자 또 로봇이 생각났습니다.
로봇 이빨은 사자보다 더 셀까?’
‘2층 아저씨 말고 다른 로봇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로봇들을 어떻게 도와주지?’
인규는 답을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괜히 찌그러진 캔을 힘껏 걷어찼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캔이 파란 대문 집 담장을 넘었습니다. 캔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컹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파란 대문에서 큰 개가 뛰쳐나왔습니다. 인규는 도망칠 겨를도 없이 큰 개와 마주섰습니다. 개는 몹시 화가 난 듯 으르렁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인규가 뒷걸음질을 치자 큰 개가 입을 벌리고 달려왔습니다.
살려주세요!”
그 때 어디선가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인규와 큰 개 사이를 가로막았습니다. 꽃무늬 치마가 낯이 익었습니다. 같은 아파트 1층에 사는 할머니였습니다. 작년에 할머니네 유리창을 깨서 크게 혼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개가 점프를 했고, 할머니가 오른쪽 다리를 번쩍 들었습니다. 개가 할머니의 다리를 덥석 물었고 인규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잠시 후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규가 눈을 뜨자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큰 개는 꼬리를 내린 채 도망가고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 다리에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덤비지 못할 게다.”
인규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할머니를 유심히 쳐다봤습니다. 늘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굽힌 채 걸었는데, 지금은 허리를 곧게 펴고 서 있습니다.
뭐해? 어서 가지 않고.”
인규는 자신이 알던 그 할머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혹시, 할머니도 로봇?’
집에 가자마자 가방을 두고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베란다 앞에 서서 안을 살펴봤습니다. 문이 닫혀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뭘 보고 있어?”
뒤에서 할머니가 소리쳤습니다. 인규는 깜짝 놀라 주저앉았습니다.
좀 전에 만났던 할머니가 맞나?’
뭘 그렇게 쳐다봐?”
호통 치는 모습을 보니까 그 할머니가 확실합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 멀쩡한 것이 이상합니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습니다.
, 나 좀 도와줄래?”
인규는 처음으로 할머니 집에 들어갔습니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고 거실에는 화분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엌에는 커다란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어제 이사를 왔거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같습니다.
빈집에서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어.’
아빠의 말이 생각나서 무서웠습니다.
거실로 옮겨야 해.”
할머니는 부엌에 있는 커다란 의자를 가리켰습니다. 할머니가 의자 앞쪽을 번쩍 들었습니다. 인규는 할머니의 엄청난 힘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인규도 의자 뒤쪽을 힘껏 들었습니다. 뒤꿈치까지 들며 온힘을 다했지만 의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밀어.”
할머니는 들고, 인규는 밀면서 의자를 거실로 옮겼습니다. 밀기만 했는데도 숨이 가빴습니다.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의자에 앉았습니다.
코드 좀 꽂아라.”
할머니는 의자 옆에 말려있던 전깃줄을 건넸습니다. 인규는 의자에 전선이 있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인규가 코드를 꽂자 할머니가 버튼을 눌렀습니다. 의자가 꿈틀꿈틀 움직였습니다. 할머니는 귀에서 조그만 기계장치도 빼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감고 등을 대자 할머니의 작은 몸이 의자 속으로 쏘옥 들어갔습니다. 아빠가 쓰던 핸드폰이 생각났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꼭 충전기에 꽂아놓은 핸드폰 같습니다. 더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규가 꾸벅 인사를 했지만 할머니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로봇은 이렇게 충전을 하는구나.’
인규는 할머니의 꽃무늬 치마 사이로 깁스한 다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인규야, 로봇은 만났어?”
아빠의 질문에 인규는 대답 대신 씨익 웃었습니다.
사실은 말이야. 아빠가 말한 그 로봇.”
아니요. 말해주지 마세요. 제가 찾아볼 거예요.”
인규는 로봇을 찾기 위해 이웃 사람들을 더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옆 통로에 사는 4층 아줌마는 키도 작고 말랐습니다. 그런데도 머리 위에 쟁반을 몇 개씩 이고 손으로 잡지도 않은 채 배달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줌마를 보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인규는 아줌마가 아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줌마가 머리에 철판을 붙이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철판은 자석처럼 아줌마 머리에 딱 달라붙어서 쟁반을 고정시켜 주었습니다. 맨 끝 통로의 3층에 사는 형은 오토바이를 기가 막히게 잘 탔습니다. 거의 바닥에 붙어서 코너를 돌았는데 사람들은 끌끌 혀를 찼지만, 인규는 바닥에서 불꽃이 이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지만 다 비밀입니다.
 
인규는 이제 더 이상 심심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 일이 더 많습니다. 1층 할머니 말동무도 해드리고, 4층 아줌마 심부름에, 3층 형이 오토바이 세차하는 것도 도와야합니다. 틈틈이 누가 로봇인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전에는 친구가 지후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아파트 사람들 모두가 친구입니다.
 
인규와 아빠가 베란다에 나와 아파트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인규야, 우리 이사 갈까?”
아니요, 이사 절대 안 돼요.”
인규는 고개를 힘껏 흔들었습니다.
? 친구도 없고 심심하다고 했잖아. 혹시, 로봇 친구가 생겼어?”
인규는 빙긋이 웃으며 아빠를 바라봤습니다.
이제 꼭 로봇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뭐라고?”
처음에는 누가 로봇인지 알아보려고 사람들을 봤는데,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서 친구가 됐어요. 로봇인지 아닌지는 이제 안 중요해요. 다 친구니까요.”
그럼. 이웃만큼 좋은 친구는 없지. 우리 인규 많이 컸네.”
인규는 낡은 아파트를 둘러봤습니다. 그때 불 꺼진 집들의 불이 켜지면서 로봇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인규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혹시…… 이 아파트도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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