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별

 
 
강감찬 별
 
 
 
 
북두칠성을 찾아 옥상에 올라왔다. 밤에 혼자 옥상에 올라온 것은 처음이다. 혹시 귀신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생각보다 옥상이 밝다. 가로등은 저 아래에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밝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반달 주위로 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달빛, 별빛이 이렇게 밝았구나. 북두칠성은 어디 있지?’
선생님께서는 국자 모양 일곱 개의 별들이 북두칠성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리 보면 이것도 국자, 저리 보면 저것도 국자처럼 보인다. 사진에는 별 사이에 선이 있어서 국자 모양이 한 눈에 보였는데, 그런 것도 없다. 인터넷을 보지 말고 직접 보고 그리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나는 빨리 내려가고 싶어서 스케치북을 열었다. 가운데 반달을 그리고 그 옆으로 여러 개의 점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떠올리며 선을 잇는데, 쿵쿵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형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괜히 겁이 나서 환풍기 뒤로 숨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침이 꼴깍 넘어갔다. ? 머리가 길고 키가 형이랑 비슷한 걸로 봐서 누나 같은데 모르는 얼굴이었다. 누나는 이리저리 하늘을 올려다봤다.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서 웃기도 했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 같아서 무서웠는데 계속 보니까 나도 하늘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까만 것은 하늘이고, 빛나는 것은 별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것밖에 모르겠다. 다시 누나를 봤다. 누나의 눈에는 하늘이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누나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다시 하늘을 봤다. 그런데,
이게 뭐지?’
별들 사이에 선이 그어져 있다.
사람 같기는 한데, 누구지?’
가만히 보니 저 앞에 있는 누나의 얼굴을 한 별이었다. 북두칠성을 찾아야하는데 처음 보는 누나의 얼굴이 왜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갑자기 더워져서 손부채질을 했다. 그 때 누나가 별을 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떡하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도망치고 싶었다. 누나가 벌써 코앞까지 왔다. 나는 뒤돌아 앉아서 스케치북에 별을 그렸다.
어머? 너도 별 보러 왔구나?”
누나가 나를 보고 웃었다.
북두칠성을 그리고 있었구나.”
나는 부끄러워서 스케치북을 가렸다.
? 북두칠성은 저쪽인데.”
누나가 반대편 하늘을 가리켰다. 나는 다시 봐도 국자가 보이지 않았다.
북두칠성만 그리는 것보다 큰곰자리까지 그리면 더 좋을 텐데.”
큰곰자리?”
맞다. 아직 안 배웠겠다. 저기 봐봐.”
누나가 내 눈 옆으로 손을 뻗어 별을 가리켰다.
북극칠성이 큰 곰의 꼬리니까 이렇게, 이렇게 이으면 큰 곰이 되는 거야. 보여?”
누나 손을 따라가며 선을 그으니까 진짜 큰 곰 한 마리가 하늘에 나타났다. 정말 신기했다. 점 옆에 있는 번호를 따라 순서대로 이으면 로봇, 호랑이, 자동차 같은 게 그려지는 점선 잇기 놀이 같았다.
근데 왜 큰곰자리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긴데, 제우스를 사랑한 칼리스토를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곰으로 만들었대. 곰이 된 칼리스토는 숲 속 깊숙이 들어가 살았는데, 사냥꾼이 된 아들 아르카스가 엄마를 못 알아보고 죽이려고 한 거야. 그 때 제우스가 둘을 하늘로 올려서 별이 되게 했는데, 그게 큰곰자리, 작은곰자리가 됐대. 저기 큰곰자리 옆에 있는 게 작은곰자리야.”
누나 말대로 큰 곰 옆에 작은 곰 한 마리가 보였다.
너 여기 살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좋겠다. 별도 실컷 볼 수 있고.”
누나는 어디 사는데?”
방학이라 할머니 집에 놀러온 거야. 여름방학 때는 망원경도 들고 와야겠어.”
누나는 말하는 동안에도 하늘을 봤다. 나도 누나를 따라 하늘을 봤다. 처음 볼 때와는 다르게 곰 두 마리가 또렷이 보였다. 누나 눈에는 다른 것들도 다 보여서 더 신기할 것 같았다.
누나, 내일도 여기 올 거야?”
물론이지. 너도 올래?”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김별이야. 너는?”
? …… 강감찬이야. 장군 말고.”
강감찬 장군에 대한 별 이야기도 있어.”
진짜? 뭔데?”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는데 그 곳을 낙성대라고 한대. 아기가 자라서 훌륭한 장군이 된 걸 보면, 별이 지혜와 용기를 준 것이 분명해.”
나는 떨어지는 별이 없나 올려다봤다. 별이 이름이 똑같은 나에게도 지혜와 용기를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옥상을 내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늘을 봤다. 역시나 없다. 분명히 저쪽 하늘에 큰 곰, 작은 곰이 있었는데 낮에는 볼 수가 없었다. 그건 별이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밖에 있었지만 누나를 볼 수 없었다. 몇 호에 사는지 물어보지 않은 게 후회됐다.
점심에 엄마가 오징어 볶음을 해주셨다. 오징어는 형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형은 빨리 먹고 많이 먹는다. 나는 형보다 먼저 먹으려고 포크를 들었다. 그런데 오징어 볶음 위에 뿌려진 깨와 깨 사이에 선이 보였다. 그 선을 하나씩 따라가니 국자 모양이었다. 오징어 볶음 위에 북두칠성이 생겼다. 조금 더 올라가니 큰 곰도 보였다. 그 때 어디선가 포크가 날아왔다. 순식간에 북두칠성이 사라졌다. 형이 큰 곰을 통째로 먹었다.
형은 큰 곰도 먹을 수 있어?”
형은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곰을 구워먹으면 뭔 줄 알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곰겹살.”
형은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웃느라 입안에 있던 게 마구 튀어나왔다.
별도 모르면서 먹는 것만 좋아하고. 하여튼 도움이 안 돼.’
나는 빨리 밤이 돼서 별이 누나를 만나고 싶었다. 밤을 기다리면서 별에 대한 책을 찾아봤다. 북두칠성은 각자 이름이 따로 있었다. 두베, 메라크, 페크다, 메그레즈…… 아라비아어에서 온 이름이라는데 너무 어려웠다. 별이 누나는 이렇게 어려운 이름도 다 알고 있을까?
 
별 이름은 외국 사람들이 지어서 어려운 게 많아. 하지만 우리말로 된 별 이름도 있어. 북두칠성은 국자별이라고도 하고,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해서 길잡이별이라고도 해.”
별이 누나가 하늘을 가리키며 우리말로 된 별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금성은 이름이 많았는데, 샛별, 어둠별 말고도 개밥바라기라는 이름도 있다고 했다. 개가 저녁밥을 기다릴 무렵에 보인다는 뜻이라고 했다. 누가 그렇게 지었는지 몰라도 꼭 우리 형이 지은 것 같았다.
별이 누나는 하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별 이름을 알려주었다. 큰곰자리 옆에는 목동자리도 있었는데 곰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누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까 밤하늘은 꼭 비밀 동화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비밀을 아는 사람한테는 그림도 보이고 이야기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나는 왜 별이 좋아?”
별은 공평해서 좋아. 아무도 가질 수 없으니까.”
나는 누나 말이 조금 어려웠다.
집에 못 가져간다는 말이야?”
누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 저건 뭐야?”
나는 남쪽 하늘에 따로 떨어져있는 별을 가리켰다. 별이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뭐지? 처음 보는 별인데.”
누나 그럼 저거 내가 이름 붙여도 돼? 내가 가진다는 건 아니고.”
누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을 따서 강감찬 별.”
누나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나도 내 별이 생겨서 신이 났다. 강감찬 별은 나처럼 크지도 않고 아주 밝지도 않았지만 볼수록 예뻤다. 누나가 노트를 꺼내 강감찬 별을 그리고 위치를 적었다.
? 별이 없어.”
누나랑 잠깐 노트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강감찬 별이 사라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별 사냥꾼이야.”
나는 어리둥절해서 누나만 쳐다봤다.
도시에서는 가끔 있는 일인데, 여기에도 있을 줄이야.”
누나가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가자! 별 찾으러.”
나는 얼떨결에 누나를 따라나섰다. 누나는 노트에 표시해 둔 위치를 물어봤다. 강감찬 별과 가장 가까운 곳에는 산이 하나 있다. 나무가 많이 없어서 사람들은 까까머리산이라고 불렀다. 형이랑 자주 가봐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누나, 별은 아무도 가질 수 없는데 별 사냥꾼은 어떻게 훔쳐간 거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은 별이 없어지는 것도 몰라.”
나는 이해가 안 됐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산에 도착하자 겁이 났다. 별이 누나는 여자인데 우리 형보다 더 용감한 것 같았다.
산은 별과 가까워서 더 잘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뭔가 뿌연 것이 온통 하늘을 덮고 있었다. 어디선가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저쪽이야.”
누나는 앞장서 걸으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나는 요괴나 괴물이 입에서 불을 뿜는 것을 상상했다. 얼음으로 된 별은 괴물의 불에 금세 녹아버렸다. 강감찬 별도 그렇게 사라질까봐 겁이 났다. 한참 걷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길을 잃은 것 같아.”
누나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봤다.
북극성이나 북두칠성을 보면 방향을 알 수 있어.”
조금 더 가니 트럭 한 대가 보였다.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루가 수도 없이 많이 쌓여 있었다. 별이 누나와 나는 트럭 뒤에 숨어 연기가 나는 곳을 쳐다봤다. 마스크를 쓴 누군가가 불구덩이 속에 자루를 넣었다. 까만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가만 보니 연기가 올라간 곳이 강감찬 별이 있던 곳이었다.
저것 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별이 누나가 입을 막았지만 마스크를 쓴 남자가 돌아봤다. 별 사냥꾼이었다.
누구야?”
별 사냥꾼의 목소리는 동굴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무서웠다. 누나가 내 손을 잡고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별 사냥꾼도 우리를 보고 뛰기 시작했다. 나는 더 빨리 뛰려다 발이 엉켜 넘어졌다. 누나가 나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발목이 아파 일어설 수 없었다. 바로 뒤에 쫓아온 별 사냥꾼이 내 팔을 잡았다. 그때 별 사냥꾼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별 사냥꾼이 눈이 부신지 고개를 돌렸다.
꼼짝 마!”
경찰 아저씨들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별 사냥꾼은 경찰 아저씨에게 잡혀갔다.
네가 신고를 했구나.”
경찰 아저씨가 별이 누나를 보며 말했다.
고맙다 친구들. 그동안 폐기물을 몰래 태운다는 신고가 있어서 찾고 있었는데, 너희들 덕분에 잡았어.”
경찰 아저씨들이 별 사냥꾼이 태우던 불을 껐다. 조금 후 연기가 사라지자 별이 다시 보였다.
누나! 강감찬 별이야.”
별이 누나도 강감찬 별을 올려다봤다.
다른 별들도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그치, 누나?”
우리가 지키면 돼. 오늘 보니까 강감찬 장군처럼 용감하던데.”
그 때 별이 누나 얼굴이 하늘에 보였다.
누나 얼굴을 한 별자리도 있어?”
별이 누나가 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여자 얼굴이 맞는데 나는 아니야. 저건 처녀자리야.”
그래? 그럼 나는 총각자리!”

내 말에 별이 누나가 크게 웃었다. 강감찬 별도 같이 웃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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