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톡

 
 
폭탄 톡
 
 
 
 
한 번만, 딱 한 번만.”
승현이는 작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괴물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승현이는 반에서 인기가 최고입니다. 재미있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셀 수 없이 많고, 요일별로 새로운 웹툰도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는 친구들끼리는 꼬끼오 톡이라고 해서 문자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지금도 승현이는 걸으면서 게임과 꼬끼오 톡을 동시에 합니다.
승현아, 이제 나 밖에 없어. 한 번만 시켜줘.”
다섯 명이 넘는 친구들이 다 가고 나만 남았습니다. 승현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괴물을 잡는구나. 나는 승현이 옆에 바짝 붙었습니다.
하고 싶어?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승현이가 스마트폰을 내밀었습니다. 진짜 좋았습니다. 하지만 만져보기도 전에 승현이가 팔을 뒤로 쑤욱 뺐습니다.
너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승현이는 혀를 쏙 내밀고 도망갔습니다.
, 너 거기 안 서!”
내가 따라가자 승현이가 더 빨리 뛰었습니다. 승현이는 달리기도 잘합니다.
할 말 있으면 톡으로 해.”
뭐라고?”
약이 올라서 더 빨리 뛰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습니다.
, 맞다. 너 핸드폰 없지.”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집니다. 나는 스마트폰도 없고, 달리기도 못합니다. 화가 나서 승현이 뒤에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니 스마트폰 고장이나 나라.”
아빠, 스마트폰 사 주세요.”
저녁을 먹던 식구들이 나를 쳐다봤습니다.
나도 없는데 네가 왜?”
4학년 형이 머리를 쥐어박았습니다.
공부도 안 하면서 스마트폰이 왜 필요해.”
엄마가 눈을 흘겼습니다.
주안아, 스마트폰이 필요한 이유를 다섯 가지만 말해볼래?”
역시 아빠는 뭔가 다릅니다.
게임도 하고, 전화도 하고, 톡도 하고, 음 또 뭐 있더라.”
갑자기 두 개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학생이 아무데서나 게임하면 안 되고, 전화와 문자는 집 전화를 쓰면 되지.”
아빠, 저는 게임도 안 하고 꼭 필요한 전화랑 문자만 할게요. 저부터 사 주세요.”
형이 끼어들었습니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끄덕 합니다.
누가 또 스마트폰 샀어? 부모들이 더 문제예요. 쓸데없이 사주니까 괜히 다른 애들까지 바람 든다니까요.”
엄마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아빠, 저도 게임은 안 하고 꼭 필요한 전화랑 톡만 할 거예요. 그리고 형보다 내가 먼저 말했어요.”
내가 먼저야. 조그만 게.”
형이 주먹으로 옆구리를 툭 쳤습니다. 나도 형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만. 둘 다 중학교 가기 전까지 스마트폰은 없다. .”
중학교는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나는 억울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승현이 옆에는 오늘도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습니다. 다 스마트폰이 없는 친구들입니다. 나도 보고 싶었지만 승현이가 얄미워서 꾹 참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게 될까요? 휴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수업 종이 울렸습니다. 다음 시간은 미술시간입니다. 그런데 숙제로 그린 그림이 없어졌습니다. 분명히 어제 다 그렸는데, 스케치북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그런데 맨 뒷장에 말풍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 내가 스마트폰을 못 사는 건 다 너 때문이야.
그림은 내가 가져간다. 내가 주는 벌이다.
 
나는 형 때문에 교실 뒤에서 진짜 벌을 받았습니다. 억울해서 또 눈물이 났지만 친구들이 볼까봐 꾹 참았습니다. 엄마 아빠한테 다 말하고, 형 스케치북을 몰래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니, 버리지 않고 욕을 써야겠습니다. 형 스케치북에 말풍선을 그리고 아니, 폭탄을 그려서 그 안에 욕을…….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스케치북 맨 앞장에 글씨를 썼습니다. 그리고 스케치북을 들고 핸드폰이 없는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지후야, 너 스마트폰 필요하지? 이거 한 번 해볼래?”
나는 스케치북을 내밀었습니다. 폭탄 모양 속에 폭탄 톡이라는 글자가 똑똑히 보입니다. 폭탄 모양을 따서 지은 이름이 마음에 쏙 듭니다.
너 친구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말해. 내가 다 전해줄게.”
나는 폭탄을 그리고 그 옆에 지후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지후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곧 웃으며 말했습니다. 폭탄 안에 지후의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 지후 : 준호야,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집에 아무도 업써.
 
왠지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것 같습니다. 틀린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말대로 공부를 좀 더 할 걸 그랬습니다. 창가 맨 앞자리에 앉은 준호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줬습니다. ‘폭탄 폭탄소리도 냈습니다. 준호는 자기 이름이 적힌 폭탄을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 준호 : 그래.
 
지후에게 다시 보여줬더니 아주 좋아했습니다. 뭔가 큰일을 해낸 기분입니다. 나는 승현이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스케치북을 내밀었습니다.
너희들 폭탄 톡 해볼래? 아무한테나 다 보낼 수 있어.”
승현이가 스케치북을 보더니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이게 무슨 톡이야? 진짜 촌스럽다.”
아무래도 승현이는 욕 폭탄을 받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 때 수빈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누나한테 보내도 돼?”
나는 조금 망설였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수빈 : 집에 가서 라면 끄려줘.
 
3층에 있는 5학년 교실로 올라갔습니다. 계단이 많아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런 건 집에 가서 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실에 들어가자 모두 나만 쳐다봤습니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습니다.
꼬맹아, 여긴 5학년 교실이야. 왜 왔어?”
나는 겨우 수빈이 누나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키가 크고 무섭게 생긴 유빈이라는 누나가 나왔습니다.
뭐야?”
나는 수빈이가 보낸 내용을 폭탄 폭탄하면서 보여줬습니다. 옆에 있던 형과 누나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습니다. 웃는 형과 누나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습니다.
- 유빈 : 시러.
 
너무 무섭게 말해서 라면 끓여주기가 싫다는 건지, 폭탄 톡이 싫은 건지 헷갈렸습니다. 톡으로는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층에서 내려오다가 형이 생각났습니다. 형에게 보낼 톡을 써서 4학년 교실로 갔습니다. 이건 꼭 필요한 말입니다. 스케치북을 내밀자 형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주안 : 형 덕분에 벌 잘 받았어. 욕 폭탄을 받아라.
바보 멍청이 똥개 얼간이 얼빵이 빵꾸똥꾸.
 
형은 구겨진 얼굴로 답장 대신 주먹을 날렸습니다. 옆에 있던 형의 친구들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래도 진짜 통쾌했습니다.
교실에 돌아오자, 수호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호는 미술시간에 같이 벌을 섰던 친구입니다.
그거 아무한테나 다 보낼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수호 : 선생님, 다음부터 그림 잘 그려올게요.
 
나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수호는 벌써 사라졌습니다. 선생님한테 톡을 보내도 괜찮을까요? 수호의 톡은 내가 형이랑 싸웠을 때 썼던 반성문 같습니다. 어쩐지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나는 그 아래 내 이름을 썼습니다.
 
- 수호 : 선생님, 다음부터는 그림 잘 그려올게요.
- 주안 : 저도요.
 
담임선생님은 처음에는 웃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톡을 보고는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어른들 흉내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 이게 꼭 필요한 대화는 아니잖아. 너도 힘들고, 스케치북도 아깝고.”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폭탄 톡을 그만둬야 할까요? 그런데 어른들은 꼬끼오 톡으로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걸까요? 그때 민주가 옆 반 정민이에게 톡을 보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 민주 : 끝나고 운동장에서 놀자.
 
옆 반 정민이는 잘 모르는 친구였습니다. 그래도 톡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정민 : 그래.
 
집에 가다 보니 민주와 정민이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난 너한테 놀자고 한 적 없어.”
무슨 일일까요? 가까이 가자 정민이가 내 스케치북을 빼앗아 민주에게 보여줬습니다.
난 배정민한테 보낸 거라고.”
?”
알고 보니 민주는 3반에 있는 여자 배정민에게 보냈는데, 내가 5반에 있는 남자 이정민한테 보여줬던 것입니다. 둘이 동시에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습니다.
미안.”
힘껏 운동장을 달렸지만 금방 잡혔습니다. 나는 민주와 모래놀이를 하고, 정민이와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기가 싫었지만 놀다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셋이 다 같이 놀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날, 나는 선생님 말씀을 생각하며 누구에게 폭탄 톡이 가장 필요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다리가 불편한 지수를 보았습니다.
지수야, 폭탄 톡 해볼래?”
지수가 나를 봤습니다.
난 보낼 친구가 없는데?”
나는 뭔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았습니다. 지수는 반에서 가장 조용한 친구입니다. 나는 뒤돌아서서 글씨를 썼습니다.
 
- 주안 : 나는 너에 친구 김주안이야. 내가 뭐 도와줄까?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에 직접 답장을 적었습니다.
 
- 지수 : 괜찮아, 나 그렇게 힘들지 않아.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나는 만날 승현이 스마트폰만 쫓아다니느라 지수랑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친구가 없으면 정말 심심했을 텐데. 나는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폭탄 톡으로 초대했습니다.
 
- 주안 : 나는 너에 친구 김주안이야. 내가 뭐 도와줄까?
- 지수 : 괜찮아, 나 그렇게 힘들지 않아.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 민주 : 그럼 놀 수도 있어?
- 지수 : 뛰는 거 말고는 다 할 수 있어.
- 수빈 : 내가 수수께끼 내볼게. 자가용의 반대말은?
- 지호 : 그건 내가 알지. 커용!
- 민주 : 재미없어.
- 지수 : ㅋㅋㅋ 재미있어.
 
쉬는 시간 내내 스케치북을 들고 폭탄 폭탄,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이게 승현이가 말했던 단체 톡인가 봅니다. 발바닥에 불이 났지만 즐거웠습니다.
 
- 준호 : 가만히 있는데 잘 돈다고 하는 것은?
 
그 때 수업 종이 울려서 아무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나는 수수께끼 정답이 궁금해서 쉬는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가만, 그런데 이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꼭 필요한 대화일까요? 잘 모르겠지만 혼자서 하는 핸드폰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지수 자리로 모였습니다. 저마다 정답을 외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폭탄 톡에다 친구들의 말을 다 받아 적었습니다. 지수도 즐거운 듯 활짝 웃었습니다. 그때 혼자 스마트폰을 하던 승현이가 다가왔습니다.
하고 싶어?”
내가 묻자, 승현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케치북을 승현이이게 주는 척하다가 뒤로 쏙 뺐습니다. 형한테 욕 폭탄을 보냈을 때처럼 통쾌했습니다. 나는 폭탄 톡에 승현이의 이름을 적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머리가 참 잘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 혹시?
 
- 준호 : 가만히 있는데 잘 돈다고 하는 것은?
- 지수 : 팽이.
- 준호 : !
- 수빈 : 엉덩이.
- 모두 : ㅋㅋㅋㅋㅋㅋㅋㅋ
- 승현 : 기계.
- 준호 : !
- 주안 : 머리.

- 준호 : 딩동댕~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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